처음 경기 소방 이야기 공모를 봤을 때, 기억에 남는 출동이 있어 모두에게 알리고 싶었다. 그렇기에 이 이야기를 써 내려가며 한 번 더 그때 출동을 떠올리며 참…. 세상 좁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9년 12월 12일은 맑은 날이었지만 그 전날에 온 눈으로 거리는 하얗게 물들어 있었으며 몹시도 추운 날이었다.
당시 필자는 구조대 막내 대원으로 (19년도 1월 임용) 평소와 다름없이 출동 대비 태세 및 훈련을 진행 중이었다.
평상시처럼 진행된 훈련을 하고 있을 무렵 20 : 14분쯤 뱃고동 소리와 함께 지령이 떨어졌다.
“남편이 술을 먹고 죽으려고 한다, 나는 무서워서 옆집으로 도망갔다.”
라는 지령이었고 바로 장비운반차에 탑승 후 출동하였다.
현장은 아파트였고 접수 경로가 112여서 그런지 경찰은 먼저 현장에 도착해있었다. 곧이어 경찰 측에서 출동한 구조대 측에게 구조대상자가 특이사항이 없으니 들어가셔도 될 거 같다는 말을 전달하였고 현장 확인 후 장비 운반차는 귀소하였다.
귀소 후 훈련을 마무리하였고 쉬었다가 허기짐을 느껴 라면에 물을 부었다. 붓자마자 뱃고동 소리가 울렸고 지령을 확인하니
“남편이 유서를 써놓고 자살한다고 집을 나갔다.”
라는 지령과 구조대상자가 처한 상황이 적혀있었다.(동료관계,힘든직장생활 등) 그리고 위치를 확인하니 무언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고 아니나 다를까 그 위치가 아까 20시쯤 나간 출동과 같은 위치였다. 아까 특이사항이 없었던 그 구조대상자가 이번엔 유서를 써놓고 밖으로 나간 것이었다.
구조대상자는 음주 상태에 약을 먹었고(무슨 약인진 확실치 않다) 영하권의 추운 날씨였기에 빨리 찾지 않으면 위험한 상황이라고 판단되어 바로 경찰과 협의 후 이곳저곳을 수색하였다. 양평 시내, 둑길, 아파트 인근을 수색하였지만 별다른 소득이 없어 장비운반차는 그 근처에 있는 친척 집에서 경광등을 끈 후 대기도 해보고 친척과 이야기도 해보았지만, 구조대상자는 그곳에 오지 않았다.
별 소득 없이 약 한 시간 정도 흘렀을 무렵에 구조대상자 측과 구급대에서 연락이 되었고 구조대상자는 자신을 찾지 말아 달라며 자신은 아파트 둑길 근처에 있다고 얘기하였다. 구급차가 먼저 그곳에 도착하니 구조대상자로 추정되는 사람이 반대쪽 둑길에 있는 것을 목격하여 황급히 길을 돌아서 그곳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구조대상자는 현장에서 사라진 후였다. 이어서 장비 운반차도 바로 현장에 도착하였고 구조대측은 아무래도 도보로 이동중인 구조대상자는
먼 거리를 이동하지 못했을 거라고 판단하여 장비운반차 주차 후 휴대용 서치라이트로 주변을 수색하기 시작하였지만, 근처에선 정말 아무것도 발견할 수가 없었다.
아…. 사람이 이렇게 빠를 수가 있나? 라는 생각이 들어 다시 차를 타고 이동하려는 중 같이 출동한 마효성 반장이 한마디 하였다.
“승제야 저기 볏단 모아놓은 거(논밭의 하얀색 마시멜로 같은 것) 뒤에 뭐 있는 거 같다 움직이지 말고 기다려봐라.”
이어서 마효성반장은 서치라이트는 반대쪽을 비추고 시선은 그 볏단 뒤쪽을 주시하였다. 1분 정도 흐르자 볏단 뒤에서 검은색 그림자가 힐끗 나와서 보더니 다시 숨는 모습이 보였고 마효성반장은 바로 그쪽에 라이트를 비추고 소리치며 뛰어갔다. 그리고 나에게는 장비운반차로 운전해서 저쪽 반대쪽 도로로 오라고 지시하며 자신은 구조대상자를 쫓아갔다. 당시 땅은 전일 내린 눈으로 전부 젖어있어 질퍽질퍽 빠져서 달리기도 쉽지 않았던 상황이고 구조대상자는 맨땅 위였기에 구조대상자가 좀 더 빠르게 도망갈 수 있었다.
필자는 장비 운반차를 돌아서 반대쪽 도로로 갔지만 도착 약 30미터 전 구조대상자가 왕복 6차선 도로를 가로질러 고가 밑 언덕아래로 뛰어가고 있었다.
이어 뒤쪽에는 마효성반장이 구조대상자를 쫓아가고 있었다. 그 당시 지휘에서는 어떠한 상황인지 무전이 왔는데, 마효성반장의 숨넘어가는 소리와
‘구조대상자 추격 중’이라는 무전이 너무 생생하게 들렸었다. (그 무전 때문에 동기들이 듣고 있다 무슨 일이냐고 개인 메시지가 오기도 하였다.)
구조대상자는 이후 약 5미터 아래 경사진 언덕길로 내려갔고 이대로라면 분명 구조대상자를 놓칠것으로 판단되어 장비운반차를 약 50m 정도 더 이동하여 고가 위에 세운 후 필자는 고가 (약 2.5m 정도) 아래로 뛰었다. 지금 구조대상자가 도망가고 있는 곳이 평소 필자가 달리기하던 코스였기에 지리는 훤히 꿰뚫고 있었고 구조대상자가 가는 길의 끝엔 분명 이곳이 나올 거라는 판단을 하였기 때문이다. 뛰어 내려간 후 고가 밑 그림자에서 숨어있으니 골목길 사이에서 구조대상자가 뛰어오는 걸 확인하였고 완전히 접근할 때까지 숨어서 기다리고 있었다.
뒤에 아무도 따라오지 않는다는 것 확인한 구조대상자는 걸음걸이가 느려지고 있었으며 지쳐 보였다. 그리고 천천히 내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지만, 아직 나를 보지 못한 것이 분명하였다.
이 정도면 충분히 잡을 수 있다고 판단되는 거리에 들어온 순간 거침없이 달려 나갔고 순간 당황한 구조대상자는 도망치려 했지만 아무래도 다시 뒤로 돌아가기엔 이미 늦은 시간이었다.
평소 주짓수, 레슬링 등을 수련한 필자는 움직이지 못하게 선 채로 꽉 붙잡아
벽으로 밀어내었고 순간 주머니에 손을 넣는 걸 보고 흉기일지도 모른다고 판단하여 더 강하게 압박하였고 완벽하게 제압하였다.
이어서 마효성반장이 도착하여 구조대상자와 대화를 시도하였고 지속된 회유와 고민 상담에 구조대상자의 몸에 힘이 풀어진 것을 확인하여 몸에 제압을 풀고 편안한 상태로 대화를 지속하였다. 5분 정도 대화하였는데 직장동료와의 갈등, 38주차 임신중인 아내 등의 내용으로 마효성반장은 능숙하게 상담을 진행하였다. 곧이어 경찰이 도착하였고 경찰에 구조대상자를 인계하며 이 상황이 종료되었다고 생각했지만, 경찰에 잡혀서 가는 순간 주머니 속에서 이상한 약을 꺼내어 먹으려고 하였고 다행히 경찰에서 제지하여 실패로 돌아갔으며 상황은 완전히 종료되었다.
이후 이 출동건이 완전히 잊혀질 21년 6월쯤 마효성 반장 옆집에 누군가 이사를 왔는데 너무나도 익숙한 얼굴이었고 필자에게도 사진을 보여주며 본 거 같지 않냐는 얘기를 계속하였다. 불현듯이 그때 그 출동이 떠올라 기록을 확인하니 그때 그 구조대상자였었다.
다행히 지금은 문제를 해결하고 다시 새롭게 잘 사는 중이며 그때 당시 38주였던 배 속의 아이는 너무나도 잘 크고 있었고 옆집 이웃으로 소주 한잔하면서 형동생 하는 사이가 되었다.
와우각상 (蝸宇角上)이라는 사자성어가있다.
달팽이의 뿔위라는 뜻으로 세상이 좁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어찌보면 그냥 구조대상자와 구조대의 일로 끝난 상황이지만 후에 또 이렇게 인연으로 만난걸보면 세상이 좁다는걸 느끼고 앞으로 내가 대하는 사람에게 있어 언젠간 또 만날 수도 있기에 한 번 더 신경을 써야겠다는 걸 느낀 사건이었다.